여행을 떠나기 전, 나는 그 나라의 언어를 거의 공부하지 않았다.
인사말조차 제대로 외우지 않은 상태로 비행기에 올랐다. 번역 앱이 있으니 괜찮을 거라 생각했고, 손짓과 표정이면 충분할 거라 믿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하자마자 깨달았다. 언어를 모른다는 것은 단순히 말을 못 한다는 뜻이 아니라, 세계를 읽는 능력의 상당 부분을 잠시 내려놓는 일이라는 것을.
그렇게 나는, 이해할 수 없는 문자와 소리 속에서 일주일을 보냈다.

단어를 잃자, 세상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처음 이틀은 혼란의 연속이었다.
길거리 간판은 전부 그림처럼 보였고, 메뉴판은 장식물에 불과했다. 사람들의 대화는 소음이 되었고, 안내 방송은 배경 음악처럼 흘러갔다. 나는 계속해서 길을 헤맸고, 매번 멈춰 서서 주변을 두리번거려야 했다.
그런데 신기한 변화가 생겼다.
단어를 이해하지 못하자, 그동안 무시하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말할 때 손을 얼마나 크게 쓰는지, 고개를 끄덕이는 속도는 어떤지, 상대와의 거리는 얼마나 유지하는지. 언어 대신 몸이 대화를 하고 있었다. 말은 들리지 않았지만, 상황은 이상하리만큼 명확했다. 지금은 기다려야 하는지, 괜찮다는 의미인지, 미안하다는 표현인지가 문장 없이 전달됐다.
나는 점점 말을 덜 하게 되었고, 대신 더 많이 보게 되었다.
표정, 시선, 발걸음, 멈춤의 타이밍.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장면들이 하나의 문장이 되었다. 언어를 잃자, 세상이 먼저 말을 걸어오는 느낌이었다.
설명할 수 없을 때, 나는 더 솔직해졌다
카페에서 주문을 할 때마다 작은 용기가 필요했다.
메뉴 이름을 읽을 수 없었고, 발음조차 짐작이 되지 않았다. 나는 메뉴판을 가리키거나, 옆 사람의 잔을 흘끗 보며 손짓으로 의사를 전달했다. 그 과정은 늘 서툴렀고, 가끔은 완전히 틀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실수들이 불편하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순간들에서 웃음이 나왔고, 상대방도 웃었다. 언어로 설명하지 못하니, 변명도 포장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이걸 원해요”, “이건 잘 모르겠어요”라는 상태 그대로의 나만 남았다.
언어가 있을 때 우리는 종종 자신을 숨긴다.
괜찮은 척하고, 아는 척하고, 이해한 척한다. 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그럴 수 없다. 모르면 모른다고, 헷갈리면 헷갈린다고 몸 전체로 드러난다. 그 상태는 놀라울 정도로 솔직했다.
일주일 동안 나는 자주 고개를 숙였고, 자주 손바닥을 펼쳤고, 자주 웃었다.
그 행동들은 단순한 제스처가 아니라, ‘나는 지금 약한 상태입니다’라는 선언 같았다. 그리고 그 약함은 생각보다 안전했다. 사람들은 대체로 친절했고, 최소한 공격적이지 않았다.
말을 모르는 여행은 결국, 나에게로 돌아왔다
여행의 후반부로 갈수록, 나는 더 조용해졌다.
말을 못 해서가 아니라, 말이 굳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혼자 걷는 시간이 길어졌고, 목적 없이 앉아 있는 시간도 늘어났다. 주변에서 무슨 말이 오가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지만, 그 사실이 더 이상 불안하지 않았다.
오히려 생각이 또렷해졌다.
말로 정리하지 않아도 되는 생각들, 누군가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감정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이해받지 않아도 괜찮은 상태. 언어가 없는 대신, 나 자신과의 대화가 많아졌다.
이상하게도, 그 일주일은 외롭지 않았다.
사람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음에도, 혼자라는 느낌이 줄어들었다. 아마도 설명해야 할 ‘나’가 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직업도, 성격도, 배경도 말할 수 없었기에, 나는 그냥 한 명의 여행자가 되었다.
여행이 끝나갈 무렵, 나는 문득 생각했다.
혹시 우리는 평소에 너무 많은 말을 하느라, 스스로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닐까. 언어는 편리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계속 ‘설명하는 사람’으로 만든다. 그 설명을 잠시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숨이 가벼워질지도 모른다.
말이 없는 일주일이 남긴 것
현지 언어를 전혀 모른 채 보낸 일주일은 불편했다.
하지만 그 불편함은 결핍이 아니라, 다른 감각이 깨어나는 과정이었다. 말이 없으니 표정이 살아났고, 단어가 없으니 장면이 오래 남았다.
돌아와서 다시 익숙한 언어 속에 들어왔지만, 가끔은 그때의 조용한 상태가 떠오른다.
아무도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나 역시 나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아마 다음 여행에서도, 나는 완벽하게 준비하지 않을 것이다.
조금은 모른 채로, 조금은 더듬거리며, 다시 그 낯선 침묵 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다.
그곳에서는 늘, 생각보다 많은 것이 말 없이도 전해졌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