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 꾸는 꿈은 이상하다.
익숙하지 않은 침대, 다른 나라의 공기, 시차가 어긋난 밤. 그 조건들이 모이면 꿈은 일상의 규칙을 잘 따르지 않는다. 집에서라면 금세 잊혀질 장면들이, 여행지에서는 유난히 선명하게 남는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방금 전까지 다른 세계에 다녀온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나는 여행을 다녀오면 사진보다 먼저 꿈을 떠올린다.
어디를 갔는지보다, 그곳에서 어떤 꿈을 꿨는지가 더 오래 남는다. 이 글은 여행 중에 꾼 꿈들만을 모아 적어본 기록이다. 현실과 상관없는 이야기 같지만, 돌아보면 그 꿈들은 전부 그 여행의 얼굴을 닮아 있었다.

낯선 침대에서 꾸는 꿈은 늘 길을 잃고 있었다
여행지에서 처음 며칠 동안 자주 꾸는 꿈은 거의 비슷하다.
나는 늘 길을 잃고 있다. 지도는 손에 있는데 글자가 읽히지 않거나, 분명 아까 지나온 거리인데 다시는 나오지 않는다. 꿈속에서 나는 서두르지만, 발걸음은 이상하게 느리다.
이상한 점은, 그 길 잃음이 무섭지 않다는 것이다.
초조함은 있지만 공포는 없다. 누군가를 찾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정해진 목적지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어디쯤 와 있구나” 하고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다.
여행지에서의 현실도 비슷했다.
낯선 도시에서 방향을 헷갈리고, 골목을 잘못 들어서도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곳에서는 길을 잃는 것이 정상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꿈은 그 상태를 과장하지도, 왜곡하지도 않고 그대로 옮겨 놓았다.
집에서 꾸는 길 잃는 꿈은 대개 불안으로 끝난다.
지각을 하거나, 누군가에게 혼나거나, 돌아갈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여행지의 꿈에서는 그런 결말이 없다. 길을 잃은 채로 꿈이 끝난다. 그 미완성은 오히려 편안하다.
아마도 그 꿈은 말하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목적보다 상태에 머무는 사람이라는 것을. 여행지에서의 길 잃음은 실패가 아니라, 잠시 허용된 방식이라는 사실을.
현실과 이어진 듯 이어지지 않은 꿈의 장면들
어떤 꿈들은 현실과 너무 가까워서, 꿈이라는 사실을 한참 뒤에야 깨닫는다.
여행지에서 꾼 꿈 속에는 실제로 갔던 카페가 등장하고, 낮에 마주쳤던 사람들이 나온다. 하지만 그들은 현실과 조금씩 어긋나 있다. 말이 통하지 않거나, 나를 알아보지 못하거나, 장소가 미묘하게 달라져 있다.
나는 여행 중 한 번, 꿈에서 전날 앉아 있던 카페에 다시 들어갔다.
그곳은 분명 같은 장소였는데, 창밖의 풍경이 전혀 다른 나라처럼 바뀌어 있었다. 메뉴판은 글자가 아닌 그림으로만 되어 있었고, 나는 아무것도 주문하지 못한 채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나서야 그 장면이 꿈이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꿈은 현실의 연장처럼 느껴졌다. 낮에 느꼈던 막연한 낯섦,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머물렀던 시간들이 꿈으로 이어진 것이다.
여행지에서의 꿈은 종종 현실의 잔상으로 만들어진다.
낮 동안 충분히 소화하지 못한 장면들, 설명하지 못한 감정들이 밤에 다시 배열된다. 그래서 그 꿈들은 상징적이기보다 구체적이고, 환상적이기보다 실제에 가깝다.
이 꿈들을 모아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나는 꿈속에서 거의 말하지 않는다. 대신 보고, 기다리고, 앉아 있다. 여행 중의 나는 현실에서도 말을 줄이고 감각을 쓰는 상태였고, 꿈은 그 침묵을 그대로 반영했다.
돌아온 뒤에야 이해된, 여행지의 꿈들이 남긴 말
여행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그곳에서 꾼 꿈들은 빠르게 희미해진다.
익숙한 침대, 익숙한 소음 속에서는 꿈도 다시 일상의 규칙을 따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여행지의 꿈들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나중에 의미를 얻는다.
일상에서 문득 멈춰 서게 되는 순간,
아무 이유 없이 속도를 늦추고 싶어지는 날,
계획 없이 시간을 보내도 괜찮다고 느껴지는 저녁.
그때 여행지에서 꿨던 꿈의 장면들이 떠오른다. 길을 잃던 꿈, 말하지 않던 꿈,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끝나던 꿈들. 그 꿈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상태로 있어도 괜찮다”고.
여행지의 꿈들은 목표를 제시하지 않는다.
성취도, 결론도 없다. 대신 상태를 보여준다. 낯설지만 안전한 상태, 불완전하지만 허용된 시간. 그 감각은 여행 중에는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지만, 일상으로 돌아와서야 대비를 이루며 선명해진다.
그래서 나는 이제 여행을 떠나면, 꿈을 하나의 기록으로 남긴다.
사진처럼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 여행의 정서적인 요약본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내가 어떤 속도로 살았는지, 무엇을 내려놓고 있었는지, 무엇을 굳이 붙잡지 않았는지를 꿈은 솔직하게 보여준다.
꿈은 여행이 남긴 가장 느린 기록이다
여행지에서 꾼 꿈들은 일정표에도,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꿈들은 그 여행이 나에게 어떤 상태를 허락했는지를 말해준다. 현실에서는 애써 지나쳤던 감정들, 이름 붙이지 않았던 여유,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던 시간들.
여행이 끝난 뒤, 우리는 사진을 정리하고 기억을 정돈한다.
하지만 꿈은 정리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그래서 더 오래 간다. 여행지에서 꾼 꿈을 떠올리는 순간, 나는 다시 그곳의 공기와 속도로 돌아간다.
어쩌면 여행의 진짜 흔적은,
어디를 갔는지가 아니라
어떤 꿈을 꾸게 만들었는지일지도 모른다.
다음 여행에서도 나는 분명 꿈을 꿀 것이다.
그리고 그 꿈들은 또다시,
돌아온 뒤에야 나에게 말을 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