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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

by 딱지쓰 2026. 1. 28.

여행에는 이상하게 ‘말하지 않은 것’이 남습니다. 사진으로 남긴 풍경보다,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않은 감정이 더 오래 남고요. 어떤 비밀은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말로 꺼내는 순간 모양이 바뀔 것 같아서 숨겨집니다. 여행 중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은 대단한 사건이 아니라, 대개 아주 조용한 마음의 움직임입니다. 오늘은 그 비밀을 세 가지 모습으로 나눠 써보겠습니다. (특정한 ‘나의 고백’처럼 읽히면서도, 독자에게도 자연스럽게 겹쳐질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여행 중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
여행 중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

“나는 생각보다 외로웠다”는 비밀: 화려한 일정 뒤에 남는 감정의 그림자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외로울 틈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볼 것도 많고 먹을 것도 많고, 이동하고 체크인하고 사진 찍느라 바쁠 테니까요. 그런데 막상 도착해 보니, 외로움은 일정의 빈틈에서 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일정이 가장 꽉 찬 날에 더 선명하게 올라왔습니다.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에서, 나는 더 또렷하게 혼자였습니다. 다들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웃는데, 나는 주문을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끝. 내 목소리는 필요한 말만 하고 사라졌습니다.

그 비밀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이유는, 이상하게도 ‘감사하지 않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행은 축복이고, 떠난다는 건 선택이고, 나보다 힘든 사람도 많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외로움을 꺼내는 순간, 이 여행이 빛을 잃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외로움은 여행의 실패가 아니었습니다. 낯선 곳에서 혼자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정직하게 마주한 경험이었습니다.

외로움은 때로 내게 좋은 질문을 남겼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조용한가?” “내가 편한 관계는 어떤 관계인가?” “나는 누구와 있을 때 내가 되는가?” 일상에서는 바쁘다는 이유로 미뤄두었던 질문들이, 낯선 도시의 밤에 갑자기 도착했습니다. 호텔 방의 조명이 너무 밝아서 창문을 열어두고, 멀리서 들리는 차 소리를 들으며 나는 그 질문들을 꺼내만 두었습니다. 답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질문을 들고 있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게 그날의 비밀이 되었습니다.

 

“나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는 비밀: 장소가 아니라 나에게서 도망치고 싶었던 마음

 

여행 중 가장 솔직한 비밀은 종종 “돌아가기 싫다”입니다. 그런데 그 말은 단순히 여행이 좋아서만은 아니었습니다. 돌아가기 싫다는 건, 돌아가면 다시 시작되는 것들이 떠올라서였습니다. 익숙한 업무, 반복되는 인간관계, 늘 비슷한 길, 늘 비슷한 피로. 여행지에서는 내가 그 모든 것에서 잠깐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때의 자유는 풍경 때문이 아니라, ‘역할이 잠깐 사라진 상태’ 때문에 생겼습니다.

나는 여행지에서 설명해야 할 것이 적었습니다. 나를 소개하지 않아도 되고, 관계를 관리하지 않아도 되고, 기대에 맞춰 말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행지의 나는 조금 더 단순해졌습니다. 먹고, 걷고, 쉬고, 또 걷는 사람. 그 단순함이 너무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말하면, 내가 지금의 삶을 싫어하는 사람처럼 들릴까 봐 말하지 못했습니다. 싫어한다기보다, 지쳐 있었는데도요.

그 비밀은 특히 공항으로 가는 날 커졌습니다. 캐리어를 끌고 플랫폼을 걸을 때, 나는 갑자기 한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집에 돌아가면 다시 ‘잘 살아야 한다’는 문장과 함께 하루가 시작될 거라는 장면. 그 문장이 무거웠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작은 타협을 했습니다. “조금만 더, 하루만 더.” 실제로는 하루를 더 늘리지 않았지만, 마음은 그 타협을 통해 숨을 돌렸습니다.

여행이 준 특별함은 결국, 도망이 아니라 확인이었습니다. 나는 어느 부분에서 숨이 막혔는지, 무엇이 나를 과하게 긴장시키는지, 어떤 리듬에서 내가 살아나는지를 여행지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돌아가기 싫다는 비밀은 여행지에 눌러두고 온 고백이 아니라, 돌아가서 바꿔야 할 것을 들고 돌아온 신호였습니다.

 

“나는 한 번, 아무도 모르는 내가 되었다”는 비밀: 작고 낯선 선택이 남긴 흔적

여행 중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은 때로 아주 작습니다. 예를 들어, 나는 그날 일부러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걸었습니다. 지도 앱을 켜지 않았고, 유명한 곳을 일부러 피했고, 사람들이 몰리는 방향과 반대로 갔습니다. 그리고 어느 골목에서 작은 빵집을 만났습니다. 들어가서 빵 하나를 샀는데, 그 빵의 이름조차 제대로 읽지 못했습니다. 그냥 손가락으로 가리켰고, 점원이 웃었고, 나는 어색하게 웃었습니다. 그게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이 내게는 ‘비밀’이 되었습니다. 그 장면을 누구에게 말하면, 그저 “빵집에 갔다”는 정보로 변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내 안에서는 다른 의미였습니다. 나는 그 순간, 누군가의 기대나 평가가 없는 상태로 선택했습니다. 잘 보이고 싶어서도, 효율적이어서도, 남들이 다 한다고 해서도 아닌 선택. 아주 작은 선택이었지만, 그 선택은 “나는 이렇게 살아도 된다”는 감각을 남겼습니다.

여행지에서는 내가 누구인지가 덜 중요해집니다. 이름, 직업, 성과, 관계의 맥락이 희미해지고, 지금의 행동만 남습니다. 그래서 나는 평소라면 하지 않을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혼자 와인 한 잔을 마시거나, 바다 앞 벤치에서 오래 앉아 있거나, 낯선 사람에게 먼저 “안녕하세요”를 건네거나. 그 행동들은 대단한 일탈이 아닙니다. 다만 일상에서의 나를 규정하던 울타리 밖으로 한 발 나가본 것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그 비밀은 여행이 끝난 뒤에도 조용히 남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그 여행 어땠어?”라는 질문에 나는 대답을 잘 못 합니다. 풍경은 예뻤고 음식은 맛있었고 사람들은 친절했다고 말할 수 있지만, 내 비밀은 그 문장들 사이에 끼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 비밀은 여행의 정보가 아니라, 여행이 내 안에 남긴 변화이기 때문입니다. 말로 설명하면 작아질까 봐, 나는 여전히 그 비밀을 조용히 들고 있습니다.

여행 중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은 결국, 숨기기 위한 비밀이라기보다 간직하기 위한 비밀입니다. 외로움, 돌아가기 싫었던 마음, 아무도 모르는 나로 있었던 순간. 그 비밀들은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아니라, 여행의 진짜 내용이었습니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새로운 장소를 보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새롭게 반응하는 나를 보기 위해서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새로운 나를 가장 잘 보게 해주는 것은, 종종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작은 비밀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