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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에서 느낀 ‘나답지 않음’에 대한 기록

by 딱지쓰 2026. 1. 29.

여행지에서 가장 낯선 건 풍경이 아니라, 그 풍경 앞에서 반응하는 ‘나’였습니다. 평소의 나라면 하지 않을 말, 하지 않을 선택, 하지 않을 표정을 그곳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꺼내게 됩니다. 그래서 여행은 종종 “나다움을 찾는 시간”이라기보다, “나답지 않음이 튀어나오는 시간”에 가깝습니다. 오늘은 여행지에서 느낀 ‘나답지 않음’을 기록처럼 남겨보려 합니다. 이상하게도 그 나답지 않음이, 결국은 나를 더 정확하게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여행지에서 느낀 ‘나답지 않음’에 대한 기록
여행지에서 느낀 ‘나답지 않음’에 대한 기록

조심하던 내가 먼저 말을 걸었던 날: 안전지대 밖에서 튀어나온 목소리

 

나는 원래 말을 먼저 거는 사람이 아닙니다. 낯선 곳에서는 더 그렇고요. 말을 걸기 전까지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몇 번이나 돌립니다. ‘이 말투가 무례하진 않을까’, ‘발음이 이상하면 어쩌지’, ‘상대가 귀찮아하면 어떡하지’ 같은 생각들이 먼저 올라옵니다. 그래서 대부분은 스스로 해결합니다. 길을 잃으면 지도 앱을 더 들여다보고, 모르면 대충 지나가고, 애매하면 그냥 포기합니다. 그게 내가 살아온 방식이었고, 그게 내가 나를 안전하게 지키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여행지에서는 이상하게 그 규칙이 느슨해졌습니다. 작은 카페에서 주문을 하려는데 메뉴가 너무 낯설어서, 결국 직원에게 먼저 물었습니다. “이거… 어떤 맛이에요?” 별말 아니었는데, 그 한마디가 나에게는 꽤 큰 사건이었습니다. 질문을 던진 순간, 얼굴이 뜨거워졌고 손이 어색해졌습니다. 그런데 직원은 생각보다 친절했고, 내 발음이 조금 서툴러도 표정을 찌푸리지 않았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내가 늘 두려워했던 건 실수가 아니라 ‘실수했을 때의 평가’였다는 걸요.

그 후로 나는 종종 먼저 말을 걸었습니다. 길을 물었고, 사진을 부탁했고, 버스 기사에게 내릴 정류장을 확인했습니다. 낯선 도시에서는 내가 평소처럼 “괜찮은 척” 버티지 않아도 됐습니다. 다시 말해, 내가 보여야 하는 ‘역할’이 얇아졌습니다. 누군가의 동료도, 누군가의 자식도, 누군가의 성실한 사람도 아닌 상태. 그냥 여행자. 그 얇아진 역할 덕분에 목소리가 더 쉽게 나왔습니다.

이 나답지 않음은 내가 갑자기 사교적으로 변했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내가 원래 갖고 있던 기능—도움을 청하고 연결되는 능력—이 일상에서 과도한 긴장 때문에 잠겨 있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여행지는 그 자물쇠를 잠깐 풀어줬고, 나는 그 틈으로 작은 용기를 꺼냈습니다.

 

계획 강박이 있던 내가 ‘아무 일정도 없는 하루’를 견딘 이유: 통제의 포기, 그리고 회복

 

나는 여행을 가면 계획을 세우는 편입니다. 정확히는, 계획이 없으면 불안해지는 편입니다. 이동 시간, 식사 시간, 동선, 예약, 영업시간… 이런 걸 정리해 두면 마음이 안정됩니다. 일정은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안전의 문제였습니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 허탕치지 않기 위해, 돈과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나는 늘 “잘 해내는 여행”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여행지에서 어느 날은 계획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날씨가 갑자기 나빠졌고, 가고 싶었던 곳은 문을 닫았고, 내가 원하는 것들이 줄줄이 어긋났습니다. 처음엔 짜증이 났습니다. 일정표가 흐트러지는 소리가 머릿속에서 났습니다. 그 소리는 “너 지금 망치고 있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평소의 나라면 그걸 만회하려고 더 바쁘게 움직였을 겁니다. 대안을 찾아 뛰고, 다른 리스트를 채우고, 손해를 회수하려고 했겠죠.

하지만 그날은 이상하게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냥 숙소 근처를 걷고, 오래 앉아 있고, 커피를 두 번 마셨습니다. 지도 앱을 덜 켰고, 사진도 덜 찍었습니다. 처음엔 ‘이렇게 보내도 되나?’라는 불안이 올라왔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 불안이 조금씩 가라앉았습니다. 가라앉고 나니 다른 감각이 올라왔습니다. 몸이 무겁다는 감각, 내가 꽤 지쳐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얼마나 귀한지.

그 나답지 않음은 계획을 포기한 게 아니라, 통제를 잠깐 내려놓은 경험이었습니다. 나는 평소에 통제를 통해 안정감을 얻었는데, 여행지에서는 이상하게도 통제를 내려놓는 쪽이 더 안정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내가 통제해야 할 ‘관계’가 적었고, 성과를 보여줘야 할 ‘평가자’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정이 비어 있는 하루를 견딜 수 있었고, 그 하루가 오히려 여행에서 가장 길게 남았습니다. 바쁘게 채운 날은 사진으로 남았고, 비워낸 날은 몸에 남았습니다.

 

‘나는 이런 취향이 아니야’라고 생각하던 것들이 좋았던 순간: 낯선 취향은 내 안의 숨은 욕구

 

여행지에서 느낀 나답지 않음은 취향에서도 나타났습니다. 나는 원래 기념품을 잘 사지 않는 편이고, 사람 많은 장소를 피하고, 유명한 것보다 조용한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여행지에서 나는 꽤 뻔한 기념품 가게에 들어갔고, 엽서를 고르고, 사소한 장식품을 샀습니다. 또 예상보다 붐비는 야시장을 걸었고, 줄이 긴 가게에서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평소의 나 같으면 “저건 내 스타일 아니야”라고 잘라냈을 일들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생각해보면 여행지의 ‘뻔함’은 일상에서의 뻔함과 성격이 달랐습니다. 일상에서의 뻔함은 반복이지만, 여행지의 뻔함은 경험입니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라면 “그냥 흔한 것”이겠지만, 여행지에서는 “나에게만 특별한 흔한 것”이 됩니다. 그래서 엽서 한 장이 ‘소비’가 아니라 ‘증거’가 됩니다. 내가 여기 있었고, 내가 이 공기를 통과했다는 증거.

그리고 사람이 많은 곳이 싫었던 건 사람 자체가 아니라, 사람 많은 곳에서 나에게 요구되는 ‘방어’가 싫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일상에서는 사람이 많으면 피곤합니다. 부딪히지 않으려 조심하고, 예의와 속도를 맞추고, 불쾌한 상황을 피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여행지의 군중 속에서는 이상하게 그 방어가 덜했습니다. 그들은 나를 평가하지 않았고, 나도 그들에게서 내 평판을 지킬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군중이 ‘피로’가 아니라 ‘풍경’으로 느껴진 순간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내 안에 “가끔은 북적임이 필요하다”는 욕구가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됐습니다.

결국 여행지에서의 나답지 않음은 ‘가짜 나’가 튀어나온 사건이 아니라, 내가 평소에 억제하던 선택들이 잠깐 허락된 사건이었습니다. 조심하느라 잠갔던 목소리, 통제하느라 굳어 있던 하루, 취향이라고 믿었던 고정관념. 여행은 그 자물쇠를 느슨하게 만들고, 그 틈으로 다른 내가 고개를 내밀게 합니다. 나는 그 나답지 않음이 조금 낯설었지만, 동시에 안심이 됐습니다. 내가 한 가지 방식으로만 사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 오히려 나를 넓혀줬기 때문입니다.

여행이 끝나고 돌아오면, 다시 원래의 내가 됩니다. 아니, 원래의 내가 더 단단하게 돌아옵니다. 다만 작은 차이가 생깁니다. 필요할 때는 말을 걸 수 있다는 자신감, 일정이 비어 있어도 망하지 않는다는 경험, 내 취향이 생각보다 유연하다는 인정. 그 작은 차이들이 일상에서 나를 조금 덜 조심하게 만듭니다. 여행지에서의 나답지 않음은 결국, 일상에서의 나를 조금 더 살게 해주는 기록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