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 혼잣말이 늘어난 건 외로워서만은 아니었습니다. 낯선 도시에서 혼잣말은 ‘말버릇’이 아니라 생존 기술에 가까웠고, 동시에 내가 나를 돌보는 방식이기도 했습니다. 평소엔 머릿속으로만 지나가던 문장들이, 여행지에서는 입 밖으로 더 자주 나왔습니다. 오늘은 그 이유를 세 가지 장면으로 나눠 기록해 보려 합니다.

길을 잃을수록 말이 나온다: 혼잣말은 즉석 네비게이션이었다
여행지에서 혼잣말이 가장 많이 나온 순간은 길 위였습니다. 낯선 역, 낯선 표지판, 낯선 교차로. 평소라면 “그냥 지도 앱 보면 되지”라고 생각하겠지만, 막상 여행지에서는 지도 앱을 봐도 마음이 바로 안정되지 않습니다. 익숙한 동네에서는 지도를 ‘확인’만 하면 되는데, 낯선 도시에서는 지도를 ‘결정’해야 하니까요. 어디로 갈지, 어느 출구가 맞는지, 지금 건너도 되는지 같은 선택이 계속 필요합니다.
그 선택을 할 때 나는 자꾸 소리 내어 말했다. “왼쪽이었나?” “일단 저쪽으로 가보자.” “아니, 여기 아닌데?” 같은 짧은 문장들. 누가 들으면 민망한 말들인데, 이상하게도 말하고 나면 방향이 잡히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머릿속으로만 굴리면 생각이 더 엉키는데, 입 밖으로 내보내면 문장이 정리되고 행동이 빨라졌습니다. 혼잣말은 생각을 문장으로 ‘압축’하는 과정이었고, 압축이 되니까 선택이 쉬워졌습니다.
특히 ‘실수했을 때’ 혼잣말이 늘었습니다. 잘못 탄 버스, 반대 방향 플랫폼, 닫혀버린 가게 앞에서 나는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괜찮아, 다시 가면 돼.” “이건 어쩔 수 없지.” 이런 말은 스스로를 달래는 말처럼 들리지만, 동시에 다음 행동을 만드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혼잣말은 감정을 진정시키는 동시에, 다음 단계를 실행하게 해주는 작은 명령문이었습니다.
여행지에서 길을 찾는 일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견디는 일입니다. 그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나는 내 목소리로 나를 붙잡았습니다. 그래서 혼잣말은 외로움의 증거라기보다, 낯선 곳에서 내가 내 편이 되는 방법이었습니다.
대화 상대가 없어서가 아니라, 내 감각이 커져서: 혼잣말은 감탄의 처리 방식이었다
혼잣말이 늘어난 이유를 “혼자 여행해서”라고만 설명하면 뭔가 빠집니다. 사실 나는 혼자 있어도 늘 조용한 편이니까요. 그런데 여행지에서는 감각이 커졌고, 그 감각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습니다. “와, 냄새 좋다.” “이 골목 너무 예쁘다.” “햇빛이 진짜 세네.” 같은 말들. 그 말들은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한 설명이 아니라, 내 감탄을 처리하기 위한 출구였습니다.
일상에서는 감탄할 일이 있어도 대개 내부에서 끝납니다. 회사, 집, 지하철 같은 익숙한 공간에서는 감탄이 굳이 밖으로 나올 이유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여행지에서는 모든 게 새로워서 감탄이 자주 발생합니다. 빈도가 높아지면 내부에서만 처리하기가 버거워지고, 자연스럽게 소리로 빠져나옵니다. 마치 숨이 차면 입으로 숨을 쉬게 되는 것처럼요.
또 하나는 여행지에서 ‘관찰자 모드’가 켜진다는 점입니다. 나는 사람들의 표정, 가게의 리듬, 신호등의 속도, 빵집에서 새어 나오는 냄새 같은 디테일을 더 많이 봤습니다. 그 관찰을 머릿속에만 담아두면 금방 흩어지는데, 말로 붙잡으면 장면이 오래 남았습니다. “여긴 신호가 진짜 길다.” “사람들이 생각보다 조용하다.” 이런 혼잣말은 기록의 시작이었습니다. 실제로 나는 나중에 메모를 쓰기 전, 먼저 중얼거린 문장들을 떠올리며 여행을 정리하곤 했습니다.
결국 혼잣말은 내가 여행을 ‘소비’하지 않고 ‘경험’하고 있다는 신호였을지도 모릅니다. 감탄을 밖으로 내보내는 행위는, 그 순간을 내 몸에 각인시키는 방식이니까요. 누군가와 함께였다면 “봐봐, 여기!”라고 말했을 문장들이, 혼자일 때는 “와…”로 바뀌어 나왔던 겁니다.
낯선 곳에서는 내가 내 보호자였다: 혼잣말은 불안을 관리하는 기술
여행지에서 혼잣말이 늘어난 세 번째 이유는 안전과 불안 때문이었습니다. 낯선 곳에서는 늘 작은 경계가 필요합니다. 소지품을 확인하고, 길을 다시 확인하고, 밤길을 피하고, 사람 많은 곳에서 몸의 위치를 조정하는 일. 이런 작업을 계속하면 마음이 조금씩 긴장합니다. 그 긴장을 풀거나 유지하기 위해, 나는 자꾸 나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예를 들어 밤에 숙소로 돌아가는 길, 나는 “큰길로 가자.” “지금은 이어폰 빼.” “가방은 앞으로.” 같은 말을 작은 소리로 했습니다. 이건 혼잣말이라기보다 ‘셀프 코칭’에 가까웠습니다. 불안이 커지면 사고가 좁아지는데, 그때 짧은 문장은 시야를 다시 넓혀줍니다. 내가 할 행동을 문장으로 정리하면, 공포가 ‘막연함’에서 ‘관리 가능한 과제’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행지에서는 실수의 비용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지갑을 잃어버리면, 길을 잘못 들면, 예약을 놓치면 수습이 어렵다는 생각이 불안을 키웁니다. 그래서 혼잣말이 “확인”의 기능을 하기도 했습니다. “여권, 지갑, 폰.” “맞아, 오늘은 이 역에서 내려야 해.” 이런 말들은 스스로를 점검하는 체크리스트였습니다.
흥미로운 건, 이런 혼잣말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나는 나에게 조금 더 친절해졌습니다. 실수했을 때도 “왜 이렇게 멍청해”가 아니라 “괜찮아, 여행이 원래 그렇지”라고 말하게 됐습니다. 평소에는 내 실수를 엄격하게 평가하는 편인데, 여행지에서는 이상하게 나를 더 쉽게 용서했습니다. 어쩌면 혼잣말이 늘어난 건, 내가 나를 돌보는 언어를 연습한 결과였을지도 모릅니다. 낯선 곳에서 살아남으려면 ‘나를 다그치는 말’보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말’이 필요하니까요.
여행지에서 혼잣말이 늘어난 이유는 결국 세 가지로 모입니다. 불확실한 길 위에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커진 감각을 처리하기 위해, 그리고 낯선 환경에서 불안을 관리하기 위해. 혼잣말은 외로움의 징후가 아니라, 여행자가 자기 자신과 대화하며 도시를 통과하는 방식입니다. 누군가와 함께일 때는 서로에게 건네던 말들을, 혼자일 때는 내가 나에게 건넸던 거죠. 그래서 그 혼잣말이 조금 민망해도, 나는 그 습관이 꽤 마음에 듭니다. 그 목소리는 여행지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동행이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