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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이 아닌 ‘동네 사람’의 하루를 그대로 따라가 본 여행

딱지쓰 2026. 1. 4. 14:52

여행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비슷한 장면을 반복해서 보게 된다. 유명한 거리, 잘 정돈된 전망대, 사람들이 줄 서 있는 식당. 분명 아름답고 인상적이지만, 그 도시가 정말 어떤 곳인지 알게 되었다고 말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하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는 아주 단순한 결심을 했다.
관광객처럼 움직이지 말고, 하루만이라도 동네 사람처럼 살아보자고.

 

관광객이 아닌 ‘동네 사람’의 하루를 그대로 따라가 본 여행
관광객이 아닌 ‘동네 사람’의 하루를 그대로 따라가 본 여행

목적지가 없는 아침, 출근하는 사람들의 속도에 섞이다

이른 아침, 알람 없이 눈을 떴다. 여행지에서의 아침은 늘 여유로워야 할 것 같지만, 오늘은 일부러 평일의 리듬을 따르기로 했다. 숙소를 나서자 이미 거리는 분주했다. 관광객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대신 출근길로 보이는 사람들이 빠른 걸음으로 지나갔다.

나는 그 흐름에 섞였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사람들이 많이 향하는 방향으로 걸었다. 횡단보도 앞에서 기다리고, 신호가 바뀌면 함께 건너고, 익숙한 얼굴처럼 보이는 사람들 틈에 자연스럽게 섞였다. 이상하게도 이 낯선 도시가 잠시나마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관광지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단골처럼 인사를 나누는 카페 직원과 손님, 매일 같은 시간에 문을 여는 빵집, 유모차를 밀며 아이를 등원시키는 부모. 그 모습들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이 도시가 ‘살아 있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었다.

이 아침에는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기록하기보다는, 그 속도와 공기를 몸에 익히고 싶었다. 관광객의 시선이 아닌, 생활자의 시선으로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특별하지 않은 점심, 반복되는 일상이 가진 힘

점심시간이 되자 배가 고파졌지만, 맛집을 검색하지 않았다. 대신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며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들어가는 식당을 골랐다. 간판은 소박했고, 메뉴는 단출했다. 관광객을 위한 설명도, 사진도 없었다.

식당 안에는 혼자 밥을 먹는 사람들이 많았다. 짧게 식사를 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공간 같았다. 나는 그들처럼 조용히 앉아 음식을 먹었다. 특별한 맛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만족스러웠다. 이 음식은 여행자를 감동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매일을 지탱하는 식사였기 때문이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근처 공원을 걸었다. 벤치에 앉아 휴대폰을 보는 사람, 잠시 눈을 붙이는 사람,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들. 관광객이라면 그냥 지나쳤을 장면들이었지만, 오늘은 그 하나하나가 인상 깊게 다가왔다.

이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여행은 없다. 대신 반복되는 하루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반복 속에는 안정감이 있고, 익숙함이 주는 여유가 있었다. 나는 그 하루에 잠시 초대받은 기분이었다. 특별하지 않아서 오히려 특별한 시간이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하루가 가장 여행 같았던 이유

해가 기울 무렵, 동네 골목을 다시 걸었다. 퇴근하는 사람들로 거리가 다시 채워졌고, 아침과는 또 다른 표정이 펼쳐졌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얼굴에는 피로와 안도감이 함께 묻어 있었다.

나는 카페에 들어가 창가 자리에 앉았다. 노트북도, 가이드북도 꺼내지 않았다. 그냥 창밖을 보며 사람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바라봤다. 여행지에서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건 처음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아무것도 놓치지 않는 느낌이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하루에는 특별한 사건이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특별하다고.
사진으로 남길 만한 장면도, 누군가에게 자랑할 이야기도 없지만, 이 도시는 오늘 나에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관광객으로서의 여행은 장소를 소비하지만, 동네 사람의 하루를 따라가는 여행은 시간을 경험하게 한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여행자라는 정체성을 잠시 내려놓고, 그냥 한 사람으로 존재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이 여행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화려한 장면은 없었지만, 이 도시에 실제로 살았던 것 같은 하루. 아마 다시 이곳을 찾게 된다면, 나는 또 관광지가 아닌 골목부터 걷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