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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에서 보낸 하루를 시(詩) 형식으로 기록하기

by 딱지쓰 2026. 2. 12.

여행지에서 보낸 하루를 시(詩) 형식으로 기록하기


여행지에서의 하루는 이상하게도 빨리 사라진다. 아침에 나섰을 때의 공기, 점심 무렵의 빛, 저녁에 스친 감정들이 하루가 끝나면 하나로 뭉개진다. 사진을 남겨도, 일정표를 적어도, 그날의 느낌은 정확히 붙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 나는 여행지에서의 하루를 시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잘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여행지에서 보낸 하루를 시(詩) 형식으로 기록하기
여행지에서 보낸 하루를 시(詩) 형식으로 기록하기

문장이 아니라 ‘호흡’으로 하루를 남기고 싶었다


여행지에서 하루를 일기처럼 쓰려고 하면 자꾸 설명이 길어진다. 어디를 갔고, 무엇을 먹었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하지만 그렇게 적고 나면 정작 그날의 핵심은 빠져 있다. 기분의 온도, 몸의 리듬, 말로 옮기기 어려운 여백들.
시를 쓰기로 한 건, 그 여백을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시는 모든 걸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설명하지 않는 부분이 더 많은 이야기를 품는다. 그래서 나는 하루를 문장으로 정리하는 대신, 그날의 호흡을 붙잡으려 했다.


아침은
생각보다 차가웠고
나는 커피보다 먼저
숨을 들이마셨다


이 네 줄만으로도 그날 아침의 공기가 돌아왔다. 장소의 이름도, 시간도 없지만, 나에게는 충분했다. 시는 정보를 남기기보다 감각을 저장하는 기록 방식이었다.

 

하루를 시로 쓰면, 중요하지 않은 것이 사라진다


하루를 시로 쓰기 시작하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무엇을 버릴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는 것이었다. 시는 길게 쓰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하루 전체를 다 담을 수 없고, 결국 가장 남기고 싶은 장면만 고르게 된다.
그날 수십 장 찍은 사진보다, 한 순간의 감정이 더 중요해졌다. 사람들과 나눈 모든 대화보다, 혼자 걷다 문득 멈춘 그 짧은 순간이 남았다.


지도에서 사라진 골목

길을 잃었다기보다
나를 조금 늦게 만났다


이 문장을 적으며 깨달았다. 여행에서 중요한 건 ‘많이 본 것’이 아니라, ‘무엇이 나를 붙잡았는가’라는 걸. 시는 하루를 요약하면서 동시에, 나의 시선을 드러냈다. 내가 무엇에 반응하는 사람인지, 무엇을 놓치지 못하는 사람인지가 그대로 드러났다.

 

시로 기록한 하루는 돌아와서도 변하지 않는다


여행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많은 기억이 흐릿해진다. 어느 날이 가장 좋았는지, 무엇이 인상 깊었는지조차 헷갈린다. 그런데 시로 적어둔 하루는 이상하게도 변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도 그날의 감정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다.
사진은 배경을 떠올리게 하지만, 시는 상태를 불러온다. 그날의 나를, 그날의 속도를, 그날의 마음을 다시 데려온다.


해 질 무렵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하루를 다 쓴 느낌이 들었다


이 문장을 읽을 때마다 나는 그날로 돌아간다. 무엇을 했는지보다, 어떻게 존재했는지가 선명해진다. 그래서 여행지에서의 하루를 시로 기록하는 건, 여행을 더 오래 살게 하는 방법이 되었다.
여행지에서 보낸 하루를 시로 기록한다고 해서, 내가 시인이 된 건 아니다. 여전히 표현은 서툴고, 어떤 날의 시는 어색하다. 하지만 그 어색함마저 그날의 일부로 남는다. 잘 쓰는 기록보다, 솔직한 기록이 오래간다는 걸 여행은 가르쳐줬다.
여행지에서의 하루는 다시 돌아갈 수 없지만, 그 하루를 담은 시는 돌아올 수 있다. 일정표에는 남지 않는 감정, 사진에는 담기지 않는 마음의 결. 시는 그 틈을 조용히 메워준다.
그래서 다음 여행에서도 나는 하루를 시로 남길 것이다.
완성된 작품이 아니라,
그날을 지나온 사람의 흔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