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 느낀 문화 충격이 아닌 문화 공감
여행 이야기를 할 때 우리는 흔히 ‘문화 충격’을 말한다. 낯선 규칙, 이해하기 어려운 관습, 예상과 다른 반응들. 하지만 어떤 여행에서는 이상하게도 충격이 거의 없었다. 대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아, 여기도 그렇구나.”
놀람보다 공감이 먼저 오는 경험. 여행지에서 느낀 건 문화 충격이 아니라, 문화 공감이었다.

다르지 않아서 놀라웠던 순간들
처음에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여행지인데, 너무 익숙했기 때문이다. 아침에 서둘러 출근하는 사람들의 표정, 점심시간에 길게 늘어선 줄, 퇴근 무렵 갑자기 느려지는 거리의 속도. 장소는 분명 다른 나라였는데, 장면은 낯설지 않았다.
길가의 작은 가게에서 주인이 계산을 하며 잠시 멍하니 서 있는 모습, 카페에서 혼자 앉아 휴대폰을 내려놓고 쉬고 있는 사람들. 그 장면들은 특별하지 않아서 더 마음에 남았다. 문화가 다르다는 설명 없이도 이해가 되는 행동들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 문화라는 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는 법이 아니라, 비슷한 하루를 다른 언어로 살아내는 방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문화 충격을 기대했던 여행에서, 나는 오히려 사람들의 ‘비슷함’에 놀라고 있었다.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된 행동들
문화 공감은 대개 설명이 필요 없다. 누군가 말해주지 않아도, 이유를 분석하지 않아도, 몸이 먼저 반응한다. 여행지에서 만난 어떤 장면들은 그런 식으로 다가왔다.
예를 들어, 가게 문을 나서며 자연스럽게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건네는 사람들, 자리가 없으면 조용히 기다리는 태도, 괜히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배려. 그것들이 ‘그 나라의 문화’라기보다, 그냥 사람의 방식처럼 느껴졌다.
이런 순간들 앞에서는 여행자라는 감각이 잠시 사라진다. 관찰자가 아니라 참여자가 된다. 다름을 해석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된다. 문화 공감은 그래서 조용하다. 감탄도 없고, 기록 욕구도 크지 않다. 대신 마음이 느슨해진다.
문화 공감은 나를 다시 보게 만든다
흥미로운 건, 문화 공감을 느낄수록 여행지는 배경이 되고, 나 자신이 더 또렷해진다는 점이다. ‘여기도 이런데, 나는 왜 이걸 유난히 힘들어했을까’ 같은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문화 충격이 외부를 향한 질문이라면, 문화 공감은 내부를 향한 질문이다. 우리는 어디에서든 비슷한 방식으로 웃고, 비슷한 이유로 지치고, 비슷한 순간에 쉬고 싶어 한다는 사실. 그걸 인정하는 순간, 여행은 더 이상 구경이 아니라 거울이 된다.
그 여행 이후로 나는 다른 문화를 볼 때 덜 서두르게 되었다. 다름을 찾기보다, 먼저 닮은 점을 느껴보려고 한다. 그러면 이해가 훨씬 빠르고, 거리도 훨씬 짧아진다. 문화는 충격으로만 배워지는 게 아니라, 공감으로도 충분히 다가올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행지에서 느낀 문화 공감은 화려하지 않다. 이야깃거리로 삼기에도 조금 밋밋하다. 하지만 그 밋밋함 속에서 나는 이상한 안도감을 느꼈다. 우리가 생각보다 훨씬 비슷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
문화 충격은 기억에 남고, 문화 공감은 기준이 된다. 이후의 여행에서, 이후의 삶에서,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의 기준.
그래서 그 여행은 특별한 사건 없이도 오래 남았다.
어쩌면 여행의 목적은 다름을 수집하는 게 아니라,
서로의 삶이 생각보다 멀지 않다는 걸 확인하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