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 가장 오래 바라본 풍경
여행을 하면 보통 많은 풍경을 본다. 유명한 전망대, 사진으로 많이 봐왔던 장소, 꼭 들러야 할 명소들. 하지만 여행이 끝나고 나면, 그중 단 하나의 풍경만 또렷하게 남아 있는 경우가 있다. 나에게도 그런 풍경이 있었다. 가장 화려하지도, 가장 인상적이지도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가장 오래 바라보게 된 장면. 여행지에서 내가 가장 오래 머물렀던 풍경이었다.

멈출 이유가 없었는데도 멈춰버린 순간
그 풍경은 일정표 어디에도 없었다. 일부러 찾아간 곳도 아니었고, 누군가 추천해준 장소도 아니었다. 그냥 걷다가, 더 이상 갈 이유가 없어 잠시 멈춘 자리였다. 벤치도 아니었고, 전망대도 아니었다. 다만 시야가 열려 있었고, 바람이 지나갔다.
처음에는 잠깐 서 있을 생각이었다. 숨을 고르고, 다음 목적지를 정하기 위해서. 그런데 이상하게도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특별히 보고 싶은 것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계속 바라보게 됐다. 시간 감각이 느려지고, 주변 소음이 점점 멀어졌다.
그 풍경은 말을 걸지 않았다. 감탄을 요구하지도 않았고, 의미를 부여하라고 재촉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더 오래 머물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상태. 그날 나는 여행자라기보다, 잠시 그곳에 놓인 사람처럼 서 있었다.
그 풍경은 나의 상태를 그대로 비췄다
지금 돌아보면, 내가 그 풍경을 오래 바라본 이유는 풍경 자체보다 내 상태에 더 가까웠다. 그때의 나는 많이 지쳐 있었고, 생각이 복잡했다. 그런데 그 풍경 앞에서는 굳이 생각을 정리하지 않아도 됐다.
파도가 반복해서 밀려오고, 구름이 천천히 움직이고, 빛이 조금씩 바뀌는 장면들. 그 변화들은 크지 않았지만, 멈춰 있지도 않았다. 그걸 보고 있자니, 나도 그렇게 있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게 나아가지 않아도, 완전히 멈추지 않아도 괜찮은 상태.
그 풍경은 위로하지 않았지만, 나를 조급하게 만들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계속 보고 있었다. 해결해야 할 질문을 내려놓고, 판단을 미루고, 그냥 바라보는 행위 자체에 머물렀다. 그건 휴식이라기보다, 긴장을 내려놓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오래 바라본 풍경은 돌아와서도 남는다
여행이 끝난 뒤, 그 풍경을 사진으로 다시 보려고 했지만 이상하게 잘 찍힌 사진이 없었다. 구도도 애매했고, 화면으로는 그때의 공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사진이 없어도 괜찮았다. 그 풍경은 이미 다른 방식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문득 멈추고 싶어질 때, 그 장면이 떠오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던 그 시간, 계속 변하면서도 조용했던 풍경. 그 기억은 나에게 속도를 조절할 기준이 되었다. 지금 너무 서두르고 있지는 않은지, 굳이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순간은 아닌지.
여행지에서 가장 오래 바라본 풍경은, 여행이 끝난 뒤에도 계속 작동한다. 화려한 장면보다, 그날의 나를 정확히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풍경은 여전히 현재형이다.
여행지에서 가장 오래 바라본 풍경은, 꼭 아름다워서 오래 본 것이 아니다. 설명할 필요가 없어서, 반응하지 않아도 돼서, 그냥 그 자리에 있어도 괜찮았기 때문에 오래 머물렀다.
어쩌면 우리는 여행에서 새로운 것을 보기 위해 떠나지만, 결국에는 지금의 나를 가장 잘 받아주는 장면 앞에서 멈추게 되는지도 모른다.
그 풍경은 여행지에 남아 있지만,
그때의 감각은 여전히 나와 함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