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 한 선택이 남긴 작은 후회
여행을 떠올리면 우리는 보통 좋았던 순간들을 먼저 말한다. 맛있었던 음식, 아름다웠던 풍경, 예상치 못한 행운 같은 것들. 그런데 여행이 끝난 뒤 오래 남는 감정은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아주 사소한 선택 하나, 그때는 별일 아니라고 넘겼던 결정이 시간이 지나며 조용한 후회로 남기도 한다. 나에게도 그런 여행의 순간이 있었다.

그때는 최선이라고 믿었던 선택
그 선택은 정말 사소했다. 갈림길 앞에서의 결정, 하나를 포기하고 다른 하나를 택하는 정도였다. 시간이 부족했고, 체력도 조금은 떨어져 있었다. 나는 ‘합리적인 쪽’을 골랐다. 덜 걷는 길, 더 편한 일정, 실패할 가능성이 적어 보이는 선택.
그 순간에는 아무 문제도 없었다. 선택한 길은 무난했고, 일정도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 계획대로 하루는 흘러갔고,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잘 선택했어. 이게 맞아.” 여행 중에는 늘 이런 자기 합리화가 빠르게 작동한다. 돌아볼 시간도, 아쉬움을 느낄 틈도 없이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선택은 이상하게도 마음에 남았다. 무언가를 놓쳤다는 확신이 아니라, ‘혹시’라는 감정으로. 그날 밤, 숙소에 돌아와서야 처음으로 떠올랐다. 만약 반대쪽을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
후회는 놓친 장면이 아니라, 놓친 나의 상태였다
흥미로운 건, 그 후회가 구체적인 장면 때문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반대쪽 길에 무엇이 있었는지 나는 여전히 모른다. 더 멋진 풍경이 있었을 수도 있고, 아무것도 없었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라, 그때의 나였다.
나는 그 선택을
할 때, 내 마음보다 조건을 먼저 봤다. 피곤함, 시간, 실패하지 않을 가능성. 여행지에서조차 나는 안전한 쪽을 택하는 사람이었다. 그 사실이 뒤늦게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후회는 “거길 갔어야 했는데”가 아니라, “그때 나는 왜 그렇게까지 조심스러웠을까”라는 질문으로 바뀌었다. 여행이라는 이름의 시간 앞에서도 나는 여전히 효율과 안정 쪽으로 기울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작은 후회는 장소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라, 나 자신을 향한 인식으로 남았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 모험을 피하는 사람인지,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하는 사람인지를 아주 또렷하게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그 작은 후회가 남긴 변화
여행이 끝난 뒤에도 그 선택은 종종 떠올랐다. 특별히 아프지도, 후회로 밤잠을 설치게 하지도 않았다. 다만 선택의 순간이 오면, 그때의 감각이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이후의 여행에서, 나는 가끔 일부러 덜 안전한 쪽을 선택하게 되었다. 꼭 결과가 좋기를 기대해서가 아니라, 적어도 내 마음을 무시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모든 선택을 바꾸지는 않았지만, 선택의 기준에 질문 하나를 더 얹게 되었다.
“지금 이 선택은 나를 편하게 하기 위한 걸까, 아니면 나를 지키기 위한 걸까.”
그 작은 후회는 여행을 망치지 않았다. 오히려 여행의 의미를 조금 넓혀주었다. 여행이란 좋은 선택만으로 완성되는 게 아니라, 선택의 흔적까지 포함하는 경험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행지에서 한 선택이 남긴 작은 후회는, 시간이 지나며 더 작아진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대신 기준이 된다. 다음 선택 앞에서 나를 잠시 멈춰 세우는 기준.
우리는 여행에서 늘 옳은 선택을 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다. 여행의 가치는 완벽한 일정이 아니라, 그 안에서 드러난 나의 방식에 있다. 작은 후회는 그 방식을 가장 정직하게 보여주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그 선택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의 나를 조금 덜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 후회는 아직도 남아 있지만,
이제는 꼭 버리고 싶은 감정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