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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 만난 나와 닮은 타인

by 딱지쓰 2026. 2. 22.

여행 중 만난 나와 닮은 타인


여행지에서는 많은 사람을 스쳐 지나간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이름을 몰라도, 그저 잠깐 같은 공간에 있었던 사람들. 대부분은 기억 속에서 빠르게 사라진다. 그런데 그중에는 이상하게 오래 남는 사람이 있다. 친해진 것도 아니고, 특별한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닌데, 돌아와서까지 자꾸 떠오르는 얼굴. 여행 중 나는 그런 타인을 한 번 만났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깨달았다. 그 사람을 기억하고 있었던 이유는, 그가 나와 닮아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

 

여행 중 만난 나와 닮은 타인
여행 중 만난 나와 닮은 타인

특별한 만남이 아니었기에 더 선명했던 사람


그 사람과 나는 말을 거의 나누지 않았다. 같은 공간에 잠시 머물렀을 뿐이다. 카페였는지, 기차역이었는지도 이제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분명한 건, 그 사람의 표정이 이상하게 익숙했다는 점이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한 얼굴, 하지만 기대보다는 체념에 가까운 표정. 주변을 유심히 보지만 적극적으로 다가가지는 않는 태도. 바쁘게 움직이지도, 완전히 멈춰 있지도 않은 그 애매한 상태. 나는 그 사람을 보며 이유 없이 시선을 오래 두고 있었다.
그 순간에는 단지 “저 사람, 나랑 비슷하네” 정도의 생각만 스쳤다. 그런데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뒤에도, 그 장면이 자주 떠올랐다. 얼굴의 생김새가 아니라, 그 사람이 공간에 존재하는 방식이 나와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닮았다고 느낀 건 성격이 아니라 ‘태도’였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그 사람에게서 본 건 성격이나 취향이 아니었다. 그건 삶을 대하는 태도였다. 너무 앞서가지도, 완전히 뒤로 물러나지도 않는 태도. 뭔가를 열심히 붙잡고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놓아버린 것도 아닌 상태.
나는 여행 중에도 늘 그랬다. 완전히 즐기지도, 완전히 내려놓지도 못한 채 어딘가를 걷고 있었다. 다음 일정이 머릿속에 남아 있으면서도, 지금 이 순간을 놓치고 싶지는 않은 사람. 그 모순된 태도가 그 사람에게서 그대로 보였다.
그래서 그 만남은 묘하게 불편했다. 여행지에서는 보통 새로운 모습을 기대하는데, 그 사람은 나에게 너무 익숙한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거울을 예기치 않게 마주친 것처럼. 외면하고 싶지는 않지만, 오래 보고 싶지도 않은 장면.

 

그 만남이 남긴 건 위로가 아니라 인정이었다


여행 중 만난 나와 닮은 타인은, 나에게 특별한 조언을 해주지도 않았고, 인생을 바꿀 계기를 주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존재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처럼 남았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도 나만은 아니구나.’
그 깨달음은 위로라기보다는 인정에 가까웠다. 내가 애매하게 머물러 있던 그 상태가, 잘못된 것도 이상한 것도 아니라는 인정. 세상 어딘가에는 나와 비슷한 방식으로 서 있는 사람이 있고, 우리는 잠시 같은 공간을 공유했을 뿐이라는 사실.
그 이후로 나는 여행지에서 사람을 볼 때, 조금 다른 시선이 생겼다. 특별해 보이는 사람보다, 이상하게 익숙하게 느껴지는 사람에게 더 마음이 갔다. 그들은 나의 미래일 수도, 과거일 수도, 혹은 지금의 나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여행 중 만난 나와 닮은 타인은, 이름도 모르고 다시 만날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만남은 여행이 끝난 뒤에도 조용히 남아 있다. 사진처럼 선명하지는 않지만, 감각처럼 계속 떠오른다.
여행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이미 알고 있던 나를 다른 얼굴로 다시 만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타인은 나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를 통해 나 자신에게 조금 더 솔직해질 수 있었다.
어쩌면 여행에서 가장 오래 남는 만남은,
친해진 사람이 아니라
나를 닮아 있어서 외면할 수 없었던 그 한 사람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