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 ‘집’이라는 단어를 떠올린 순간
여행을 떠날 때는 늘 설렌다.
익숙한 길을 벗어나고,
늘 보던 건물을 지나치지 않아도 되고,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가는 기분.
그런데 어느 순간,
아주 뜻밖의 타이밍에
‘집’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창밖의 풍경을 보다가,
호텔 침대에 누워 있다가,
낯선 도시의 저녁 공기를 마시다가.
“지금 집에 있었다면…”
여행 중인데도
왜 우리는 집을 떠올릴까?

낯선 풍경 속에서 더 또렷해지는 익숙함
여행은 모든 것이 새롭다.
표지판도 다르고,
길의 방향도 다르고,
사람들의 말소리도 다르다.
이 낯섦은 처음엔 흥분을 준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은근히 에너지를 소모한다.
뇌는 계속 해석해야 하고,
몸은 계속 적응해야 한다.
그래서 여행지에서 어느 순간
익숙함이 그리워진다.
집은 편안함의 상징이기 전에
해석할 필요가 없는 공간이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어떤 소리가 나는지 알고,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어떤 냄새가 날지 안다.
여행지에서 ‘집’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건
지루해서가 아니라
안정된 감각을 잠깐 떠올리고 싶은 순간일 수 있다.
낯선 것 속에 오래 머물면
익숙한 것이 더 선명해진다.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을 떠올릴 때
여행지에서는 자유롭지만,
동시에 조금은 긴장한다.
식당에서 메뉴를 고를 때도,
숙소에서 체크인을 할 때도,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도
작게나마 나를 설명해야 한다.
이름, 목적, 일정.
하지만 집에서는
아무 설명도 필요 없다.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든,
말수가 적든 많든,
누군가에게 이해받으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여행지에서
하루 일정을 마치고 방에 들어왔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지금 집이었다면…”
그건 그 장소가 더 좋다는 뜻이 아니라,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를 떠올리는 것이다.
여행이 자유라면,
집은 해방이다.
여행이 끝나가고 있다는 작은 신호
흥미로운 건
‘집’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순간이
대개 여행의 중반이나 후반이라는 점이다.
처음에는 모든 게 새롭고,
계획대로 움직이느라 정신이 없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여행의 리듬이 안정되면
마음이 조금 느슨해진다.
그때 집이 떠오른다.
그건 여행이 지루해졌다는 뜻이 아니라,
이 시간이 충분히 채워졌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이제 돌아가도 아쉽지 않을 만큼 봤다.”
“이만큼이면 충분하다.”
집은 끝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돌아갈 기준이 있다는 안도감이기도 하다.
어디든 떠날 수 있는 건
돌아갈 곳이 있기 때문이다.
여행지에서 ‘집’을 떠올린 순간은
모순처럼 느껴진다.
낯선 곳에 와서
왜 익숙한 곳을 생각할까.
하지만 그 순간은
여행이 실패했다는 신호가 아니다.
오히려 여행이 충분히 깊어졌다는 신호일 수 있다.
낯선 풍경 속에서
익숙함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고,
자유 속에서 안정의 가치를 느끼고,
멀리 와서야 가까운 것을 선명히 보는 시간.
여행은 항상 밖으로만 향하지 않는다.
때로는 안쪽으로 돌아온다.
혹시 여행 중에
문득 집이 떠올랐다면
그걸 실망이라고 해석하지 않아도 된다.
그건 아마 이런 뜻일지도 모른다.
“나는 잘 떠났고,
나는 돌아갈 곳도 있다.”
집은 공간이 아니라
기준이다.
그리고 여행지에서 집을 떠올린다는 건
내가 여전히 나의 기준을 잃지 않았다는 뜻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