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올릴 때 대부분은 풍경을 먼저 기억한다. 사진으로 남긴 하늘, 건물의 윤곽, 바다의 색깔. 하지만 이번 도시는 조금 다르게 남아 있다. 눈으로 본 장면들은 희미해졌는데, 이상하게도 냄새만은 또렷하다. 이 여행을 기억 속에서 다시 꺼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이미지가 아니라 공기였다. 나는 이 도시를 냄새로만 기억하고 있다.

도착하자마자 코끝에 남은 첫인상
공항 문을 나서는 순간, 낯선 냄새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습한 공기, 오래된 건물에서 올라오는 냄새, 어디선가 풍겨오는 음식 냄새가 섞여 있었다. 설명하기 어려운 그 조합은 단번에 ‘여기구나’라는 감각을 만들어냈다. 그 냄새는 환영 인사처럼 느껴졌고, 동시에 이 도시가 가진 시간의 층위를 암시하는 듯했다.
택시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는 동안 창밖을 보는 것보다 공기를 들이마시는 데 더 집중했다.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에는 바다의 짠 냄새와 배기가스가 묘하게 섞여 있었다. 깨끗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분명히 개성이 있었다. 이 도시는 향기로 자신을 포장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의 냄새를 숨기지 않았다.
숙소 근처에 도착했을 때, 또 다른 냄새가 나를 맞이했다. 오래된 골목에서 나는 축축한 냄새, 세탁물이 마르며 풍기는 비누 향, 그리고 저녁을 준비하는 집집마다 흘러나오는 음식 냄새. 그 모든 것이 겹쳐지며, 이 도시의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게 해주었다.
냄새가 만들어준 동선과 기억들
여행 중 나는 종종 냄새를 따라 움직였다. 맛집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그 냄새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골목 끝에서 풍겨오는 빵 굽는 냄새, 시장 근처에서 진하게 느껴지는 향신료 냄새, 해질 무렵 강가에서 올라오는 물비린내까지. 냄새는 나를 자연스럽게 다른 장소로 이끌었다.
특정 장소를 떠올리면 그곳의 냄새가 함께 떠오른다. 작은 카페에서는 볶은 원두 냄새보다 젖은 나무 테이블의 냄새가 더 기억에 남아 있다. 오래 머문 공원에서는 풀 냄새보다 사람들의 체취와 햇볕에 데워진 벤치의 냄새가 섞여 있었다. 이 도시는 향기로운 순간보다 현실적인 냄새를 더 많이 남겼다.
이상하게도 냄새는 감정을 즉각적으로 불러왔다. 같은 장소라도 시간에 따라 냄새가 달라졌고, 그에 따라 나의 기분도 달라졌다. 아침의 도시는 비누와 커피 냄새로 깔끔했지만, 밤이 되면 술과 음식, 그리고 하루의 피로가 섞인 냄새로 무거워졌다. 나는 그 변화 속에서 이 도시가 숨 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진보다 오래 남은 후각의 기억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뒤, 사진을 다시 꺼내봤다. 분명히 내가 다녀온 도시인데, 사진 속 풍경은 생각보다 낯설게 느껴졌다. 대신 어떤 사진을 보는 순간, 그때 맡았던 냄새가 먼저 떠올랐다. 이 도시의 기억은 이미지가 아니라 후각을 통해 재생되고 있었다.
냄새는 사진처럼 정지된 기록이 아니다. 아주 개인적이고, 설명하기 어렵고, 공유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그만큼 솔직하다. 그 도시의 냄새는 나에게 그곳이 어떤 곳이었는지를 가장 정확하게 말해주었다. 화려하지 않았고, 깔끔하지도 않았지만, 분명히 살아 있었다.
가끔은 일상 속에서 우연히 비슷한 냄새를 맡을 때가 있다. 젖은 아스팔트 냄새, 특정 향신료의 향, 바람에 섞인 바다 냄새. 그 순간 나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다시 그 도시로 돌아간다. 사진을 보지 않아도, 지도를 펼치지 않아도 된다. 냄새 하나면 충분하다.
아마 시간이 더 지나면 그 도시의 구체적인 장면들은 더 흐려질 것이다. 하지만 냄새는 오래 남을 것이다. 기억은 반드시 눈으로만 남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이 여행이 나에게 알려주었다. 나는 여전히 그 도시를 냄새로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