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가방을 쌀 때마다 나는 늘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필요 이상으로 많은 물건을 챙긴다. 하지만 여행이 끝날 무렵, 가방은 늘 가벼워진다. 그 안에 있던 무언가들을 하나둘 버리고 돌아오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그 사실이 유독 선명하게 느껴졌다. 돌아보니 이 여행은 장소보다 버린 물건들로 더 또렷이 기억되고 있었다.

처음엔 쓸모있어 보였던 것들
여행 첫날의 가방은 꽉 차 있었다. 깨끗한 옷들, 예쁜 신발,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한 잡다한 소품들. 모두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챙긴 물건들이었다. 그중 몇몇은 여행 초반까지만 해도 제 역할을 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그 물건들은 점점 짐이 되기 시작했다. 한 번도 입지 않은 옷, 생각보다 불편했던 신발, 매번 들고 다니기만 했던 가벼운 소품들. 나는 그 물건들을 사용할 때보다 옮기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첫 번째로 버린 건 낡은 티셔츠였다. 여행용으로 적당하다고 생각했지만, 세탁이 번거롭고 건조도 잘 되지 않았다. 쓰레기통에 넣는 순간 약간의 망설임이 있었지만, 곧 가방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알았다. 버리는 행위는 단순한 정리가 아니라, 여행의 방향을 바꾸는 선택이라는 것을.
버린 물건마다 남은 이야기
여행 중반, 나는 점점 더 쉽게 물건을 버리기 시작했다. 필요 없는 것과 필요했던 것의 경계가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한 번도 꺼내보지 않은 화장품, 생각보다 무거웠던 책, 여행 초반에만 유용했던 종이 지도. 그 물건들에는 각각의 기대와 계획이 담겨 있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끝내 다 쓰지 못한 노트였다. 여행 기록을 꼼꼼히 남기겠다는 다짐으로 챙겼지만, 실제로는 하루에 몇 줄 쓰는 것도 버거웠다. 그 노트를 버리며 느낀 건 아쉬움보다 해방감이었다. 기록하지 않아도, 이 여행은 충분히 내 안에 남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건을 버릴 때마다 나는 묘하게 솔직해졌다. 이 여행에서 내가 정말로 필요했던 것은 생각보다 적었다. 그리고 그 적은 것들만으로도 하루는 충분히 흘러갔다. 버린 물건들은 단순한 짐이 아니라, 불필요했던 나의 욕심과 불안의 흔적처럼 느껴졌다.
가방이 가벼워질수록 선명해진 기억
여행 막바지에 이르자, 가방은 처음보다 눈에 띄게 가벼워졌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여행의 기억은 더 무거워졌다. 남은 물건들은 대부분 꼭 필요했던 것들이었고, 그 물건들에는 분명한 사용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 여행에서 내가 가장 많이 사용한 물건은 의외로 단순한 것들이었다. 편한 신발, 물병, 작은 가방. 그 외의 것들은 결국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여행을 하며 나는 물건을 버렸지만, 동시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기준을 조금 더 선명하게 얻었다.
돌아오는 날, 공항에서 마지막으로 가방을 정리하며 다시 한번 쓰레기통 앞에 섰다. 이 여행과 함께 떠나보낼 준비가 된 것들이 더는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뿌듯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생각했다. 이 여행에서 가장 많은 걸 남긴 건, 가장 많이 버린 순간들이었다고.
여행이 끝난 뒤에도, 집에서 가방을 풀며 그 감각이 이어졌다. 일상에서도 불필요한 물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행 중 버린 물건들은 여행지에만 남아 있지 않았다. 그것들은 이후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영향을 주고 있었다.
이 회고록은 물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여행을 통해 덜어내는 법을 배운 한 사람의 기록이다. 그리고 그 배움은, 여행이 끝난 후에도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