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여행지에서 쓴 메모를 10년 뒤 다시 읽으며 쓴 글

딱지쓰 2026. 1. 5. 00:56

정리를 하다 우연히 오래된 노트를 발견했다. 표지는 닳아 있었고, 모서리는 구겨져 있었다. 한때는 가방 속에서 늘 함께 다녔을 노트였다. 첫 장을 넘기자 익숙하지 않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분명 내가 쓴 글인데, 어딘가 남의 문장처럼 느껴졌다.
그 노트는 10년 전, 여행지에서 적어 내려간 메모들이었다.

 

여행지에서 쓴 메모를 10년 뒤 다시 읽으며 쓴 글
여행지에서 쓴 메모를 10년 뒤 다시 읽으며 쓴 글

그때는 중요해 보였던 문장들


노트 속 메모들은 대부분 짧았다. 길게 쓰기보다는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을 급히 붙잡은 흔적에 가까웠다. “이 거리는 생각보다 조용하다”, “혼자라서 더 좋다”, “왜 여기까지 왔을까”. 지금 보면 다소 감상적이고, 어딘가 미완성된 문장들이었다.
당시의 나는 여행 중에도 늘 무언가를 이해하려 애썼다. 이 여행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이 장소가 왜 특별한지, 지금 느끼는 감정의 정체는 무엇인지. 그래서 메모에는 질문이 많았다. 답은 거의 없었지만, 질문만으로도 충분히 중요하다고 믿었던 시기였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 문장들을 다시 읽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나는 참 바쁘게 나를 설명하려 했구나.”
그때의 나는 여행을 통해 무언가를 얻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성장, 깨달음, 변화 같은 단어들이 노트 곳곳에 등장했다. 여행은 쉬는 시간이 아니라,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시간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같은 문장을 다르게 읽게 된 이유


메모를 읽다 보니, 어떤 문장들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예를 들어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루가 불안하다”라는 문장. 당시에는 그 불안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지금의 나는 그 문장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멈추는 법을 몰랐고, 멈추면 뒤처질 것 같았던 사람이라는 사실을.
또 다른 페이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곳에 오래 머물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때는 일정 때문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읽어보니 그 문장은 장소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진단처럼 보였다. 오래 머무를 여유가 없었던 사람, 어디든 잠시 들렀다 가야 마음이 편했던 사람의 문장이었다.
10년이라는 시간은 문장을 바꾸지 않았지만, 읽는 사람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그래서 같은 메모가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었다. 과거의 나는 그 문장을 쓰며 현재를 기록했고, 지금의 나는 그 문장을 읽으며 과거를 이해하고 있었다.

 

기록은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노트를 덮고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이 메모들을 쓸 때의 나는, 언젠가 다시 읽게 될 거라고는 아마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잊지 않기 위해, 혹은 지금의 감정을 붙잡기 위해 썼을 뿐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메모들은 미래의 나에게 도착한 편지가 되었다.
그 편지는 완성된 조언도, 명확한 메시지도 담고 있지 않았다. 대신 흔들리던 시선, 서툰 감정,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래서 더 진짜 같았다. 지금의 나는 그 메모들을 통해, 10년 전의 나를 판단하기보다 이해하게 되었다.
여행은 끝났지만, 기록은 끝나지 않았다. 메모는 시간이 지나며 다른 역할을 하게 된다. 당시에는 현재를 붙잡는 도구였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는 과거를 건너 현재를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창이 된다.
이제 나는 여행 중 메모를 예전처럼 자주 쓰지는 않는다. 하지만 가끔은 일부러 몇 줄을 남긴다. 언젠가의 내가 다시 읽을 수 있도록. 그때는 또 어떤 의미로 읽히게 될지 모르지만, 그 또한 나의 일부일 것이다.
10년 전 여행지에서 쓴 메모를 다시 읽으며, 나는 하나를 확신하게 되었다.
기록은 기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건너 나 자신과 다시 만나기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