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 가장 오래 기다린 시간에 대한 이야기
여행에서는 늘 무언가를 기다린다.비행기, 기차, 버스, 체크인, 음식, 해 질 녘의 빛. 하지만 그중에서도 유난히 오래 기억에 남는 기다림이 있다. 계획에 없던 지연, 이유를 알 수 없는 정체, 그리고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상태. 그 기다림은 시간의 길이보다 감정의 밀도로 남는다.나는 여행지에서 유난히 오래 기다린 하루를 아직도 또렷이 기억한다. 시계는 천천히 갔고, 주변의 소리들은 커졌다. 그날의 기다림은 목적지보다 오래 머물렀고, 일정표보다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이유를 알 수 없을 때, 시간은 갑자기 무거워진다 그 기다림은 설명이 없었다.전광판에는 ‘지연’이라는 단어만 반복되었고, 안내 방송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흘러갔다. 언제 출발하는지, 왜 멈췄는지 알 수 없었다. 이유를 모르는 기다..
2026. 1. 22.
같은 장소를 아침·정오·밤에 각각 기록한 비교 여행기
같은 장소, 다른 하루시간은 공간을 몇 번이나 다시 태어나게 한다여행을 하다 보면 우리는 종종 ‘장소’를 기억한다고 생각한다.하지만 조금 더 솔직해지면,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장소 그 자체라기보다 그곳에서 보낸 특정한 시간이다.아침의 공기, 정오의 소음, 밤의 그림자.같은 골목, 같은 광장, 같은 카페 앞 벤치라도 시간대가 달라지면 전혀 다른 도시처럼 느껴진다.이번 여행에서는 의도적으로 한 장소를 하루 세 번 찾았다.아침, 정오, 그리고 밤.이동하지 않고, 새로움을 찾지 않고, 오직 시간만 이동했다.그 결과, 여행은 공간의 확장이 아니라 감각의 깊이로 바뀌었다. 아침 ― 장소가 아직 말을 걸지 않는 시간아침의 장소는 늘 조용하다기보다 아직 깨어나지 않은 상태에 가깝다.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람이 있어..
2026. 1. 19.
여행지에서 만난 ‘침묵의 순간’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늘 무언가를 기대한다. 새로운 풍경, 새로운 말, 새로운 설명들. 여행은 보통 소음으로 기억된다. 사람들의 언어, 거리의 음악, 사진을 찍으며 나누는 감탄.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번 여행을 돌아보면, 가장 또렷하게 남아 있는 것은 소리가 아니라 침묵의 순간들이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 설명도 필요 없었던 시간들. 그 조용함 속에서 여행은 비로소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말이 사라진 자리에 풍경이 남았다여행 초반, 나는 늘 하던 대로 움직였다. 풍경을 보면 설명하고 싶어졌고, 감정을 느끼면 말로 붙잡고 싶었다. 혼자 여행 중이었지만, 마음속에서는 계속 문장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곳은 어떤 곳이고’, ‘이 순간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고’. 침묵은 어색했고, 무언가는 기록되어야..
2026. 1.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