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52 여행 중 길 위에서 보낸 시간만 모아 쓴 글 여행 중 길 위에서 보낸 시간만 모아 쓴 글여행을 떠올리면 우리는 도착한 장소부터 생각한다. 유명한 풍경, 맛집, 사진으로 남길 장면들. 하지만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뒤, 가장 오래 남는 기억은 종종 목적지가 아니다. 그곳으로 가는 길, 도착하지 않아도 괜찮았던 시간들이다. 이 글은 여행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던 시간’만을 모아 쓴 기록이다. 도착하지 않아도 괜찮았던 시간들여행 중 길 위에 있는 시간은 묘하게 안전하다.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고, 그렇다고 끝난 것도 아니다. 버스 안, 기차 창가, 공항 대기석, 낯선 도시의 인도 위. 그 시간에는 성과도, 평가도 없다. 그냥 이동 중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감정이 유예된다.이 시간에 우리는 잘못 도착할 걱정을 하지 않는다. 아직 도착하지 않았기 때.. 2026. 2. 3. 여행지에서 보낸 가장 지루한 날 여행지에서 보낸 가장 지루한 날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하루하루가 특별할 거라고 믿는다. 새로운 풍경, 낯선 음식, 사진으로 남길 만한 장면들. 하지만 막상 여행지에 도착하고 며칠이 지나면, 꼭 그런 하루가 온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딱히 할 것도 없고, 어딜 가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날. 여행지에서 보낸 가장 지루한 날이다. 기대가 모두 소진된 다음의 하루여행 초반의 감정은 속도가 빠르다. 모든 것이 새롭고, 작은 일에도 쉽게 흥분한다. 하지만 그 에너지는 오래가지 않는다. 몇 번의 관광과 이동이 지나가고 나면, 기대는 눈에 띄게 줄어든다. 보고 싶었던 건 거의 다 봤고, 먹고 싶던 것도 어느 정도 먹었다. 일정표는 남아 있지만, 마음은 더 이상 설레지 않는다.이때 맞이하는 하루는 유난히 지루하게.. 2026. 2. 2. 현지인의 조언을 한 번도 따르지 않았을 때의 결과 현지인의 조언을 한 번도 따르지 않았던 여행은, 이상하게도 “큰 사고” 대신 “작은 손해”가 계속 쌓이는 여행이었습니다. 지도 앱과 리뷰만 믿고 움직이면 얼핏 효율적인데, 여행이 끝나고 나면 남는 건 사진보다 피로인 경우가 많죠. 현지인의 조언을 일부러 무시했던 것도 아닌데, 결과적으로 나는 한 번도 그 조언을 채택하지 않았고, 그 선택은 여행의 질감 자체를 바꿔버렸습니다. 오늘은 그때의 결과를 세 가지 장면으로 정리해보려 합니다. 정답을 찾아다녔는데, ‘내 자리’가 없었다: 일정은 매끈했지만 마음이 거칠었다 그 여행에서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답”을 따라 움직였습니다. 검색 상위 맛집, 별점 높은 카페, 저장 수가 많은 포토 스팟. 루트도 최적화했고, 이동 시간도 최소화했고, 실패 없는 선택만 하려 .. 2026. 2. 1. 여행지에서 혼잣말이 늘어난 이유 여행지에서 혼잣말이 늘어난 건 외로워서만은 아니었습니다. 낯선 도시에서 혼잣말은 ‘말버릇’이 아니라 생존 기술에 가까웠고, 동시에 내가 나를 돌보는 방식이기도 했습니다. 평소엔 머릿속으로만 지나가던 문장들이, 여행지에서는 입 밖으로 더 자주 나왔습니다. 오늘은 그 이유를 세 가지 장면으로 나눠 기록해 보려 합니다. 길을 잃을수록 말이 나온다: 혼잣말은 즉석 네비게이션이었다여행지에서 혼잣말이 가장 많이 나온 순간은 길 위였습니다. 낯선 역, 낯선 표지판, 낯선 교차로. 평소라면 “그냥 지도 앱 보면 되지”라고 생각하겠지만, 막상 여행지에서는 지도 앱을 봐도 마음이 바로 안정되지 않습니다. 익숙한 동네에서는 지도를 ‘확인’만 하면 되는데, 낯선 도시에서는 지도를 ‘결정’해야 하니까요. 어디로 갈지, 어느 출.. 2026. 1. 31. 목적지를 바꾸게 만든 우연한 대화 여행에서 목적지를 바꾼 순간은 대개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우연히 건네받은 한두 문장으로 시작됩니다. 계획표는 머리로 만든 길이고, 대화는 몸을 움직이게 하는 길이니까요. 그래서 “목적지를 바꾸게 만든 우연한 대화”는 여행의 방향만 바꾼 게 아니라, 그 여행을 기억하는 방식까지 바꿔놓습니다. “거긴 지금 비수기라 진짜 좋아요”라는 한마디: 계획이 흔들릴 때 마음이 움직인다 원래 목적지는 A도시였다. 유명한 전망대와 오래된 시장, 지도 앱에 저장해 둔 카페들까지. 나는 늘 그렇듯 여행을 ‘안전하게’ 설계해 두고 떠났다. 그런데 도착한 첫날, 체크인 시간까지 애매하게 남은 오후에 숙소 근처 작은 식당에 들어갔다. 메뉴판을 한참 들여다보던 나에게 사장님이 가볍게 말을 걸었다. 어디서 왔냐고, 며칠 머무냐고. .. 2026. 1. 30. 여행지에서 느낀 ‘나답지 않음’에 대한 기록 여행지에서 가장 낯선 건 풍경이 아니라, 그 풍경 앞에서 반응하는 ‘나’였습니다. 평소의 나라면 하지 않을 말, 하지 않을 선택, 하지 않을 표정을 그곳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꺼내게 됩니다. 그래서 여행은 종종 “나다움을 찾는 시간”이라기보다, “나답지 않음이 튀어나오는 시간”에 가깝습니다. 오늘은 여행지에서 느낀 ‘나답지 않음’을 기록처럼 남겨보려 합니다. 이상하게도 그 나답지 않음이, 결국은 나를 더 정확하게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조심하던 내가 먼저 말을 걸었던 날: 안전지대 밖에서 튀어나온 목소리 나는 원래 말을 먼저 거는 사람이 아닙니다. 낯선 곳에서는 더 그렇고요. 말을 걸기 전까지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몇 번이나 돌립니다. ‘이 말투가 무례하진 않을까’, ‘발음이 이상하면 어쩌지’, ‘상대가 .. 2026. 1. 29. 이전 1 2 3 4 5 6 7 8 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