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51 여행지에서 쓴 메모를 10년 뒤 다시 읽으며 쓴 글 정리를 하다 우연히 오래된 노트를 발견했다. 표지는 닳아 있었고, 모서리는 구겨져 있었다. 한때는 가방 속에서 늘 함께 다녔을 노트였다. 첫 장을 넘기자 익숙하지 않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분명 내가 쓴 글인데, 어딘가 남의 문장처럼 느껴졌다.그 노트는 10년 전, 여행지에서 적어 내려간 메모들이었다. 그때는 중요해 보였던 문장들노트 속 메모들은 대부분 짧았다. 길게 쓰기보다는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을 급히 붙잡은 흔적에 가까웠다. “이 거리는 생각보다 조용하다”, “혼자라서 더 좋다”, “왜 여기까지 왔을까”. 지금 보면 다소 감상적이고, 어딘가 미완성된 문장들이었다.당시의 나는 여행 중에도 늘 무언가를 이해하려 애썼다. 이 여행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이 장소가 왜 특별한지, 지금 느끼는 감정의 .. 2026. 1. 5. 현지 슈퍼마켓만 방문하며 알게 된 나라의 민낯 여행을 떠나기 전, 나는 이번만큼은 관광지를 최소화하자고 마음먹었다. 유명한 거리도, 인증샷이 남는 장소도 굳이 찾아가지 않기로 했다. 대신 내가 선택한 곳은 의외로 단순했다. 현지 슈퍼마켓. 그 나라 사람들이 매일 드나드는 공간, 가장 사적인 소비가 이루어지는 장소를 통해 그 나라를 이해해 보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된 여행은, 예상보다 훨씬 솔직한 얼굴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관광지는 말해주지 않는 일상의 풍경여행지에 도착한 첫날, 나는 숙소 근처의 슈퍼마켓으로 향했다. 화려한 간판도 없고, 관광객을 배려한 설명도 없는 공간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이곳이 내가 알고 있던 ‘여행지’와는 전혀 다른 세계라는 걸 느꼈다.진열대에는 화려한 기념품 대신, 대용량 생수와 저렴한 즉석식품들이 눈에 띄었다... 2026. 1. 5. 여행 중 버린 물건들로 구성한 회고록 여행 가방을 쌀 때마다 나는 늘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필요 이상으로 많은 물건을 챙긴다. 하지만 여행이 끝날 무렵, 가방은 늘 가벼워진다. 그 안에 있던 무언가들을 하나둘 버리고 돌아오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그 사실이 유독 선명하게 느껴졌다. 돌아보니 이 여행은 장소보다 버린 물건들로 더 또렷이 기억되고 있었다. 처음엔 쓸모있어 보였던 것들여행 첫날의 가방은 꽉 차 있었다. 깨끗한 옷들, 예쁜 신발,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한 잡다한 소품들. 모두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챙긴 물건들이었다. 그중 몇몇은 여행 초반까지만 해도 제 역할을 했다.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그 물건들은 점점 짐이 되기 시작했다. 한 번도 입지 않은 옷, 생각보다 불편했던 신발, 매번 들고 다니기만.. 2026. 1. 5. 한 도시를 냄새로만 기억한 기록 여행을 떠올릴 때 대부분은 풍경을 먼저 기억한다. 사진으로 남긴 하늘, 건물의 윤곽, 바다의 색깔. 하지만 이번 도시는 조금 다르게 남아 있다. 눈으로 본 장면들은 희미해졌는데, 이상하게도 냄새만은 또렷하다. 이 여행을 기억 속에서 다시 꺼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이미지가 아니라 공기였다. 나는 이 도시를 냄새로만 기억하고 있다. 도착하자마자 코끝에 남은 첫인상공항 문을 나서는 순간, 낯선 냄새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습한 공기, 오래된 건물에서 올라오는 냄새, 어디선가 풍겨오는 음식 냄새가 섞여 있었다. 설명하기 어려운 그 조합은 단번에 ‘여기구나’라는 감각을 만들어냈다. 그 냄새는 환영 인사처럼 느껴졌고, 동시에 이 도시가 가진 시간의 층위를 암시하는 듯했다.택시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는 동안 창밖.. 2026. 1. 5. 여행지에서 만난 실패만 모은 이야기 여행지에서 만난 실패만 모은 이야기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늘 잘 될 거라 믿는다. 길을 헤매도 그것은 낭만이 되고, 계획이 어긋나도 추억이 될 거라고 쉽게 말한다. 하지만 실제 여행 속에는 그렇게 포장되지 않는 순간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불편하고, 창피하고, 괜히 떠났다는 생각이 드는 장면들. 이번 글에서는 그런 순간들만 모아보려 한다. 잘 찍힌 사진도, 완벽한 일정도 없는, 여행지에서 만난 실패들에 대한 기록이다. 기대가 컸던 만큼 어긋났던 순간들첫 번째 실패는 늘 ‘기대’에서 시작된다. 이곳에 가면 분명 좋을 거라고, 이걸 먹으면 여행이 완성될 거라고 믿었던 순간들. 하지만 현실은 기대만큼 친절하지 않았다.한참을 걸어 도착한 전망대는 생각보다 훨씬 평범했다. 사진 속에서는 웅장해 보였지만, 실제로는 이.. 2026. 1. 4. 지도 없이 걷다가 도착한 장소들만으로 만든 여행기 이번 여행에서 나는 아주 무모한 선택을 했다. 지도를 보지 않기로 한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목적지를 설정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도, 얼마나 걸어야 할지도 정하지 않은 채 그저 발이 닿는 대로 걷기로 했다. 여행에서 길을 잃는다는 건 보통 불안한 일로 여겨지지만, 이번에는 그 불안을 일부러 초대해 보고 싶었다. 길을 잃겠다는 선택이 여행을 시작하게 했다숙소를 나서며 휴대폰의 지도 앱을 껐다. 화면이 꺼지자 동시에 마음이 조금 허전해졌다. 이제부터는 이 도시가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처음에는 본능적으로 큰 길을 따라 걸었다. 익숙한 풍경, 익숙한 소음. 하지만 곧 골목 하나가 눈에 들어왔고, 별다른 이유 없이 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지도 없이 걷는다는 건 방향 감각.. 2026. 1. 4. 이전 1 ··· 5 6 7 8 9 다음